세차

세차를 좋아하시나요? 

나는 보통 주말 아침에 집 근처의 손 세차장에서 세차를 한다. 꽤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늘 적지 않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시간에 세차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에 진심이다.
그들이 자신의 몸을 닦듯이 정성스럽게 세차하는 모습을 보면, 다나베 세이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쓴 작가)의 수필집, ‘여자는 허벅지’의 ‘조몰락거리는 여자’편이 생각난다. 그녀는 목욕탕에서 가장 위풍당당하게 목욕을 하는 부류가 아이가 있는 현역 부인이라고 했다. 그녀가 만약 목욕탕이 아니라 세차장을 관찰했다면 가장 위풍당당하게 세차를 하는 부류로 새벽 세차를 하는 사람들을 꼽았을 것이다. 

최근 그 세차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한동안 세차를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주유를 하다가 ‘세차 기계 작동 중’이라는 표지판을 보게 되었다. 주유를 하면 할인까지 해준다길래 한 번 사용해봤는데, 이렇게 편리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에 문화적 충격을 받고 말았다.
진입대 위에 앞바퀴를 올려놓고 시동을 끄면 이후는 모두 자동으로 진행된다. 컨베어 벨트에 놓인 차가 천천히 동굴 속으로 진입하면 주변이 번쩍거리고 앞 유리창에 비가 왔다가 이내 눈보라가 분다. 다시 바람이 불고 걸레들이 덥덥거리며 유리창을 두드리면, 바로 세차 종료. 전 프로세스에 오분이 채 안 걸린다는 게 더 놀라웠다.

‘이 정도면 21세기 최고의 발명품 아니야?’ 했지만, 찾아보니 이 기계는 공식적으로 탄생한 지 50년이 넘었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었음) 첫 세차 기기인 ‘워싱’은 1962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사업가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는데, 그때는 브러시 두 개를 사용하는 반자동 기계였다고 한다. 그다음 해에 드라이 브러시가 추가된 신형이 선보였고, 다시 일 년 후에 현재와 거의 비슷한 완전 자동 세척기가 등장한 것이다.

그 정도로 오래되었다면 지금쯤은 유리창의 새똥 자국은 알아서 벅벅 긁어버리고 차체 광도 번쩍번쩍하게 내줘야 할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오십 년 동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마치 아날로그 라디오처럼… 물론 현재의 자동세차기에도 나처럼 입 떡 벌리는 사람이 있으니 굳이 더 발전시킬 필요를 못 느꼈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발전시켜야 할 분야가 한둘이 아닐 테니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나 같아도 

‘자동세차기는 이만하면 됐으니, 매장의 키오스크나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일하는 곳 근처의 카페에서 키오스크로 주문을 했어야 했는데, 카드를 꽂는 곳을 못 찾아서 꽤 고생을 했었다. 영수증이 나오는 곳, 바코드를 찍는 곳, 카드를 밀어 넣는 곳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데다가, 영수증이 나오는 입구로는 꽤 그럴듯하게 카드가 밀려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다시 빼내느라 고생했었다. 그건 그렇고, 세차할 때 쇠솔로 휠을 30분이 넘게 문지르는 이유는 뭔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다시 더러워질 텐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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