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편이다. 아니 아예 잃어버리질 않는다. 그것 만큼은 자신 있다. 유일하게 잘 잃어버리는 건 우산인데, 그것도 다른 물건을 안 잃어버리는 것만큼 자신이 있다면 좀 이상한가? 희한하게도 장소는 모두 – 백 프로 – 지하철이었는데, 플랫폼에 내려서 창문 안쪽으로 내가 앉아있던 자리 밑에 놓여있는 우산을 보는 기억이 늘 생생하다. 어쨌든, 그 외에는 내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내 방에는 기기나 부품들이 여기저기 가득 쌓여있는데, 나는 십 년 전에 산 usb 메모리가 어디 놓여 있는지까지 다 알고 있는 편이다. 어딘가에 물건을 두고 일어나도 열 걸음 멀어지기 전에 인지한다. 손톱만 한 아파트 도어 카드도 있어야 할 자리에 없으면, 바로 ‘아, 어제 입었던 운동복 바지 주머니에..’하고 세탁기로 달려가 바지와 함께 같이 잘 빨려있는 그것을 찾아낸다.(내가 생각해도 이런 건 좀 자랑할만한 것 같음. 아님 말고)
그런데, 어제 애플 펜슬을 잃어버리고 만 거다.
그것도 내 방에서 말이다. 이건 정말 이전에는 없던 사건이다. 그 전날 밤 이전 아이패드에 붙어 있던 펜슬을 새로 산 아이패드에 붙여 테스트했었다. 한참 낙서를 하다가 방바닥에 패드와 펜슬을 놓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면서 가방에 새로 산 패드를 집어넣었고, 그때 펜슬이 패드에 붙어있지 않았다.(펜슬 안에는 자석이 있어 패드 옆쪽에 붙여 보관할 수 있음). 하지만, 그다지 펜슬을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집을 나섰다.
정말 내 방을 샅샅이 네 번 뒤졌다. 뒤지면서도 이해가 안 갔다. 분명히 바닥에 놓아두었는데 책상 밑에 가 있을 리도 없고, 책상 서랍 속에 있을 리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서랍 속까지 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무리 바닥 전체를 뒤져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상 서랍을 열면서도 거기에 있을까 봐 두려웠다. 그렇다면 분명히 치매나 몽유병일 테니 말이다. 다행히 안 나왔지만, 그렇다고 그게 좋지도 않은 복잡한 감정이 되어 버렸다.
아이패드를 보면 여전히 애플 펜슬이 연결되어 있고, 배터리도 75프로나 남아있었다. 진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있나? 길거리의 킥보드를 앱으로 찾을 때처럼 짜증 났지만, 그건 소리라도 나는 것이다.(사실 거리에서는 소리가 나도 더럽게 찾기 힘들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그냥 오후에 애플 펜슬을 사 왔다. 그 귀신같은 펜슬을 블루투스 해제해 버리고, 완전히 내 기억 속에서 지워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펜슬이 아니라 귀신, 야차, 오니다. 어쩌면 바로 옆 평행 세계로 전이되어버린 불쌍한 물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블루투스 신호로 이異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건가? 알게 뭐람. 어쨌든 나는 자연스럽게 잃어버린 셈 칠 것이다.
‘길거리를 걷는데 가방의 조금 열린 틈으로 떨어져 버렸네?’
하고 생각하려 했다. 근데 그건 말이 안 된다. 나는 가방을 정말 너무 꼭 잘 잠그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패드에서 기존 펜슬의 블루투스 연결을 해제하고, 새 펜슬을 개봉해 연결했다. 깔끔하게 새 펜슬이 연결되었다. 그림을 그려봤다. 하지만,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심지어는 못 그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우울한 상태로 예능 프로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로봇 청소기가 거실을 가로지른다. 문득 어제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로봇 청소기가 예약된 스케줄로 구동되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아닐 것이다. 확률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너무 희박했다. 우선 그 이후 나는 로봇 청소기의 먼지통을 비웠다. 먼지통의 입구가 작아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실제로도 들어있지 않았다. 청소기는 진공 흡입과 함께 두 개의 긴 고무 밀대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먼지를 말아 올리는데 – 두 고무 밀대는 애플 펜슬 정도의 길이지만 – 펜슬이 그 밀대 흡입구와 수평으로 만날 가능성은 극히 적을 것이다. 분명히 직진할 때 앞쪽에 바퀴에 걸려서 옆으로 밀리게 될 테지. 그렇긴 해도 한번 들여다 볼만한 가치는 분명히 있다. 나는 이미 책상 서랍 속까지 들여다본 것이다.
그런데, 아니 진짜 저게 말이 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