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브리얼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을 읽고 나서 다음으로 선택한 그녀의 소설은 ‘섬에 있는 서점(The Storied Life of A.J. Fikry)’. 이 책의 줄거리는 이래요.
아내와 사별한 후, 외딴섬 앨리스 아일랜드에서 홀로 서점을 운영하며 까칠하게 늙어가는 남자 에이제이. 설상가상으로 그의 유일한 재산이자 자랑거리이던 에드거 앨런 포의 희귀본마저 도난당하며 그의 삶은 완벽한 진흙탕에 처박힌다. 그런데 그 지독한 절망의 한가운데서, 누군가 서점 한구석에 두 살배기 아이 마야를 버리고 간다. 이 처연한 우연이 고립되어 있던 한 남자의 삶을, 그리고 문 닫기 직전이던 서점을 어떻게 구원해 내는지에 관한 이야기.
이 작품은 2022년에 동명의 영화(The Storied Life of A.J. Fikry)로도 만들어졌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크린으로 옮겨진 결과물은 꽤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관객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많은 비평가들이 이 영화를 두고 감동을 쥐어짜 내려는 작위적인 ‘할 마크(Hallmark) 채널 스타일의 뻔한 영화’라며 혹평을 했죠.
사실 위에 적어놓은 줄거리만 봐도 영화적으로 신선할 가능성은 없어 보일 것 같네요. 하지만 저는 이 소설 본연의 텍스트, 작가의 글쓰기 방식이 꽤 마음에 드는 걸 어쩌나요? 그녀는 과장하거나 감동을 억지로 포장해 묘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바로 옆에서 관찰하듯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캐릭터들을 그려내요. 그 시선이 오히려 묘하게 키치 한 매력을 만들어내며,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세련되게 격상시킵니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뿐이죠. 무언가를 배울 때 긴장하는 것처럼 – 대부분은 잘 숨기지만 – 가르칠 때도 늘 확신이 부족합니다. 그런 이유로 가끔은 아이가 더 속이 깊을 수도 있다는 것. 마음에 드는 여인을 보러 가기 위한 구실로 아이에게 토피어리 동물관에서 코끼리를 보여준다고 했지만, 겨울 담요로 덮인 토피어리 동물원에서는 어떤 동물의 모양도 볼 수 없었어요.
근데 있잖아요, 아빠! 담요로 덮었는데도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난 상상할 수 있어요. 호랑이도! 유니콘도!
이 아이(마야)가 성장해 가면서 그녀 주위의 우주가 점점 확장되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이 소설의 백미 중 하나입니다.
마야. 쓰다 막혔을 때는 읽는 게 도움이 된다. 안톤 체호프의 ‘미녀’, 캐서린 맨스필드의 ‘인형의 집’, J, D, 샐린저의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ZZ 패커의 ‘브라우니’ 혹은 ‘딴 데서 커피를 마시다’, 에이미 헴플의 ‘앨 졸슨이 묻혀 있는 묘지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뚱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인디언 마을’
아직도 고등학교 시절의 리딩만 뜯어먹고 살아가고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하이퍼링크처럼 읽을 책들을 소개해주는 소설이라니… 어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나요? 아주 특별하거나 세상에 없는 스토리는 아니지만, 탄탄한 글쓰기 실력과 섬세한 캐릭터 묘사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를 끌고 가는 웰메이드 소설을 마주하고 싶은 분들께는 추천드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