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베르가못 콜드 브루 라…’
커피는 보통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는 편인데, 지난달 우연히 주문했던 스타벅스의 스페셜 음료인 슈크림 프라푸치노 위드 판나코타(?)가 너무 괜찮았어서 스페셜 음료가 나오면 왠지 한번 마셔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슈크림 프라푸치노 위드 판나코타는 마시는 내내 꿈 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그걸 주문하려다가 비슷한 아이스 슈크림 라테를 주문하는 실수를 했고 – 더럽게 똑같이 생겼음 – 결국 계절이 지나 다시는 마실 수 없게 되어버렸다. 죽을 때까지 다시는 못 마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얼마 동안은 상당히 우울했다.
어쨌든, 오늘 새롭게 출시된 계절 음료를 메뉴판에서 만나보게 되었고, 나는 별 고민 없이 그라디에이션이 예쁜 미드나잇 베르가못 콜드 브루 – 이름이 참 – 벤티를 주문했다.(자전거를 타서 목이 엄청 말랐다.) 생각보다 매장에 손님이 없어서 바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나는 엄청난 크기의 투명 컵에 담긴 음료를 받아올 수 있었다. 아니 그런데 어쩌면 음료를 이렇게 담을 수가 있는 거지? 마치 모래를 삽으로 팡팡 쳐 눌러 담은 양동이처럼, 리드 밑면에 바로 음료가 닿아있다. 심지어 옆에서 보면 컵 보다도 수면이 높다. 고객을 엄청나게 생각하는 바리스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님, 20그람 더 담았어요.’
하고 싱긋 웃었던 배스킨 라빈스 직원 이후로 두 번째 감동이었다. 플라스틱 컵의 리드에는 스트롱 구멍이 있는데, 이 곳이 덮개로 막혀있어서 스트롱을 꽂으려면 그 플라스틱 덮개를 들어 올려 뒤쪽 홈에 끼워야 한다. 그냥 구멍이 뚫려있어도 크게 문제없을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되어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 코로나 균이 안 들어가게 하려 한 건가?’
하지만 그건 십 년 전부터 그랬다. 어쨌든, 입구의 플라스틱 덮개를 들어 올리는 게 – 제대로 절개가 되어있지 않았는지 – 쉽지 않았다. 들어 올리기 위한 노력에 덮개가 눌리면서 꿀럭꿀럭 커피가 덮개 옆의 홈으로 흘러나왔다가는 다시 들어갔다. 주둥이 덮개에 손잡이가 달린 것도 아니고, 손톱으로 들어 올리려고 수 분간 바늘에 실 꿰는 것 같은 작업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짜증이 터졌다. 나는 청결한 성격 덕분에 손톱도 짧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반짝하고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런 건 내 장점이다.
초등학교 때 친척들 모두 산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외삼촌이 큰 얼음 덩어리를 가져왔는데, 막상 음료에 담아 먹으려니 그 얼음을 깰 아이스 픽이 없었다. 그때도 얼음 덩어리 옆에 수박을 담아왔던 몸통이 들어갈만한 비닐봉지를 보고, 반짝 묘안이 떠올랐다. 얼음을 그 큰 비닐봉지에 담아 옆의 돌더미에 내리쳐 깨면 될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갑자기 친척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고, 그것을 인식한 나는 조금 더 우아하게 – 어깨를 살짝 감아 내리며 – 얼음을 내리쳤다. 그러다가 얼음과 바위 사이에 손가락을 찧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붕대를 감고 다녔다는 이야기. 물론 식구들은 아이스커피를 잘도 마셨다.(나는 손가락이 으스러져서 마시고 싶지 않았음)
‘스트롱으로 눌러 덮개를 안쪽으로 밀어 버리면 되잖아.’
너무 비상했다. 스티브 잡스도 이런 생각을 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스트롱을 들어 덮개를 안쪽으로 살짝 밀었다. 그런데, 그 정도 힘으로는 미동도 없다. 나는 약간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상남자스럽게 순간적으로 스트롱에 힘을 가했다.
‘퍽~’
요란한 소리와 함께 덮개가 밀려들어가면서 리드 바로 밑까지 가득 차 있던 커피가 주변으로 튀어 올랐다. 순간적으로 옷, 가방, 테이블, 의자, 얼굴, 머리에 한꺼번에 가 미드나잇 베르가못 콜드 브루가 튀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라 이게 무슨 현상인 건지 바로 이해가 안 갔다. 고객 엿먹이기만을 엄청나게 생각하는 바리스타였나? 오랜만에 살짝 초여름 같은 날씨에 기대하지 않았던 폭포수, 분수를 마주한 느낌이었는지, 건너편 커플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건네 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더위를 씻어준 분수쑈에 감사드려요.’
나도 살짝 웃으며 표정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더운 건 아니잖아요…
아직 여름은 멀었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