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거리와 우산

샌프란시스코에는 비가 겨울에만 온다. 겨울이 우기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다. 큰 더플백을 들고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던 날에도 비가 내렸다. 우버를 타고 시내로 가는데 – 십 년 넘게 샌프란에 살았다는 – 운전사는 비가 오는 것을 거의 처음 본다고 했다.…

날짜 변경선과 크리스마스 이브의 소멸

몇 년 전 겨울, 날짜변경선을 지나 호주로 가면서 크리스마스이브를 잃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가 23일, 시드니에 도착한 날이 25일이었으니, 나의 2015년에는 크리스마스이브가 – 바빌로니아의 바벨탑처럼 –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건 왠지 억울하게 느껴진다.

브레이브 걸스와 황태 부각

노래방에서 다른 사람들이 노래할 때조차 못 부른다고 생각하면 박수를 치지 않아. 노는 자리에서 왜 저래?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다고. 그만큼 나는 적어도 음악에는 관대한 사람이 아니야. 나한테 박수를 받으려면 그렇게 음정이 반에 반음씩 살짝 떨어지거나 해서는 안돼. 드러밍이나 기타의 스트로크에 보컬이…

꽉 찬 일주일

먹는 동안 한 친구는 불금을 보내는 술자리의 안주를, 한 친구는 승진한 남편을 위해 준비한 저녁상을 찍어 보내왔다. 요리를 직접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직접 만들었으면 그만큼 근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카롱을 다 먹고는 소파에 잠깐 기대어 누웠다.…

로봇청소기의 복수

어쨌든, 나는 패드에서 기존 펜슬의 블루투스 연결을 해제하고, 새 펜슬을 개봉해 연결했다. 깔끔하게 새 펜슬이 연결되었다. 그림을 그려봤다. 하지만,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심지어는 못 그리기까지 했다.

봄의 시작

대출대에서 건네받은 낡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고전은 내게 ‘당신,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하고 빈정대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미 이 책을 초등학교 때 읽었다. 그때쯤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아가사 크리스티 외에도 가스통 르루, 엘러리 퀸 같은 주변 작가들의 작품까지 모조리 섭렵한…

일요일 오후는 늘 평화롭다

커피를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아 지금 막 사온 책을 꺼냈는데, 너무 얇아서 조금 실망해 버렸다. 물론 그 짧은 지면 안에서 엄청난 이야기들이 전개되었다가 불꽃처럼 마무리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물리적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 서울에서 출발했다면 경기도 광주 정도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추운 겨울날

지난 주 날씨는 상대에게 ‘너 또 이러면 다시는 안 만날 거야!’ 하는 이야기를 들은 연애 초년병처럼 바짝 긴장한 듯했다. ‘이렇게 밍밍하게 운영할 거면, 올해부터는 아예 겨울을 없애버린다?!’ 실업자가 되기 싫은 겨울 담당자는 삼한사온 三寒四溫이라는 오래된 규칙을 다시 쓰겠다는 각오로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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