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와 아포칼립스

요즘 chatGPT가 꽤 핫합니다. 여기저기에 관련 포스트도 많고, 유튜브에도 넘쳐나는 관련 클립들 덕에 타임라인이 지저분한지도 한참 됐죠. 비슷하게 유행인 그림을 그려주는 인공지능도 미드저니 Midjourney 이후 설치형까지 나와 한두 번 해당 서비스를 통해 일러스트를 뽑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chatGPT를 보면 NLP(Natural Language Processing)의 퀄리티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인 자연어 인식 및 생성이 고도화된다는 이야기는 특이점 Singularity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짧게는 1-2년 내에 인간은 일상생활에 위협을 받을만한 큰 변화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바야흐로 대 혼란의 시대입니다. 


AI는 인간의 창의력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안심하기 전에 창의력에 대한 정의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해 내는 사람들도 있어요. 장르를 만들어내고, 세상에 없던 이론을 도출해 내는 극히 일부의 천재들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죠. 하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창의력의 산출물은 대부분 과거 경험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혼합물입니다. 레퍼런스를 참고한 작곡이나, 여러 화풍을 조합한 새로운 시도, 여러 소설의 스토리를 짜깁기 한 소설. 우리는 이런 산출물들을 창의력을 활용한 재해석이라 평가합니다. 물론 너무 뻔한 카피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죠. 

일반적인 업무수행에서의 창의력은 더 단순합니다.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벗어나지 않는 변화추구, 약간 다른 방식의 데이터 조합, 기존에 봐왔던 기능들을 참고한 UI/UX.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놀랄 만큼 딥러닝의 작동구조와 비슷합니다. 게다가 이런 창작의 기반이 되는 특정 인물의 과거 경험이 과연 얼마나 방대할까요? 과연 존재하는 모든 과거 데이터를 때려 넣고 학습시킨 알고리즘보다 거대할 수 있을까요?

chatGPT의 문제점들에 대한 이슈도 끊이질 않죠. 편향된 의견이나 잘못된 정보. 그렇다면, 한 사람의 판단과 의견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일 수 있을까요? 고비용 컨설턴트를 고용한다 해도 해당 컨설턴트의 경험과 지식수준 하에서의 산출물을 전달받을 뿐입니다. 완벽한 것은 없어요. 오히려 대부분 놀라울 정도로 어설픕니다. 

길게 이야기했지만 일반적인 창작활동 혹은 업무를 인간대신 수행하는 데에 있어, 인공지능은 크게 부족함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특이점의 시작이 멀지 않은 이유예요. 대부분의 직업들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고, 그 결과 인류는 아이덴티티 상실로 인해 허무와 무기력에 허우적거리게 되겠죠.


책임의 영역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예술, 콘텐츠 생산의 영역에서부터 먼저 AI의 인간 대체가 시작될 텐데요. 앞으로 사람의 역량 평가 기준은 기존처럼 콘텐츠를 생산하는 능력이 아닌, AI에게 콘텐츠를 생산하게 만드는 프롬프트(명령어)를 잘 도출하는 능력이 될 겁니다. 물론 이런 콘텐츠들은 대부분 퀄리티가 낮겠지만, 생산 리드타임이 짧기 때문에 결국은 엄청난 효율 속에서 인간의 산출물들을 압도하게 될 테고요. 

하지만, 과연 그런 콘텐츠가 인간이 생산해 낸 콘텐츠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게 제가 던지고 싶은 화두입니다. AI의 창작물이 과연 흥할 수 있을까요? 기존처럼 팬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비즈니스 쪽은 AI가 어느 순간 인간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퀄리티로 커버하게 되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술 쪽은 조금 다릅니다. 그렇다고 예술 쪽은 AI가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기존 창작물은 그 창작물 이면에 그 창작물을 만들어낸 불완전한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런 존재가 여러 역경과 경험을 바탕으로 – 이것이 스토리죠 – 완벽에 가까운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대중은 창작물의 퀄리티로 첫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이후 그 이면의 스토리에 빠져 더욱더 그 창작물과 그것을 만들어낸 예술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 스토리들은 방송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역사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술자리의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 사회 속 예술의 기능이겠죠. 

하지만, AI의 창작물은 – 퀄리티는 좋을 수도 있겠지만 –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의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롬프트에 의해 짧은 리드타임으로 질려버릴 만큼의 양을 생산해 내거든요. 물론 그 알고리즘을 만들어낸 스토리는 있겠지만, 인공지능의 창작물은 높은 비율로 대수의 법칙을 따른 우연에 기반합니다. 인고의 노력이나 일곱 번 쓰러지고 여덟 번 일어난 스토리 따윈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 콘텐츠들이 홍수처럼 쏟아질 겁니다. 이미 인터넷상에는 chatGPT로 몇 초 만에 뽑은 포스트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유튜브도, 멜론도, 다른 SNS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사람의 창작물 수를 압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사람의 창작물은 점점 빛을 잃고 찾기 힘들어지겠죠. 대중은 그런 저급한 콘텐츠의 홍수에 질려버리게 되고, 예술은 대중에게 더 이상 안식을 주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빠른 발전 속도는 인간을 지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100년도 못 사는 인생임에도 여백 없이 새로운 것들에 치이다가 일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아포칼립스죠. 이십 년 전 지금의 1/10도 안 되는 양의 대중가요가 발표되던 때에 저는 음악을 더 사랑했던 것 같아요. 

콘텐츠의 핵심 요소는 창의력보다는 영혼이 아닐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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