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만 해도 지루한 겨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우중충한 하늘 밑을 걸어 점심 식사를 하러 갔었으니 말이다. 한동안 아침마다 기온을 체크했지만 좀처럼 코트를 벗을 수 없었고, 이 정도라면 봄이 영영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듣는다 해도 인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봄이 없어진다면 물론 아쉽긴 하겠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이미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도 있다. 고민이 있어도 비교군을 잘만 선택하면 아무런 노력 없이도 조금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 어쨌든 누가 뭐래도 우주는 죽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 잠깐 밖으로 나왔는데 쓰레기 봉지를 들고 있는 내 앞에 봄이 서있었다.
‘조금 늦었어.’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다.
‘벚꽃 준비를 해야 해서…’
정도의 이유였을까? 우리 아파트 쓰레기장의 벚꽃나무에 꽃이 피면 그 아래에서는 하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드러진다. 그때가 되면 은근히 재활용 쓰레기가 모이기를 기다리게 된다. 아무리 멋져도 쓰레기장에 벚꽃만 구경하러 가는 건 왠지 내키지 않으니까.
어쨌든 올해도 벚꽃은 볼 수 있게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