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는 분명히 겨울의 끝자락인데, 햇빛이 닿는 거리에 있으면 계절이 살짝 한걸음 앞으로 내디딘 기분. 두 계절이 한 공간에 있지만 그게 묘하게 어울리는 날이다.
계절의 공감각共感覺
차가운 공기가 차단된 카페의 창쪽에 앉아 통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빛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완연한 봄이라는 생각뿐이다. 자전거를 탈 때의 싸늘한 기억이 사라질 만큼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이라니… 매년 겪어 지겨워야 할 텐데 늘 새롭게 느껴지는 건, 한해 중 이맘때만이라는 제약조건 때문일 거다. 이 경험 이후 일 년 동안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날 테고, 그런 기억의 적층현상으로 오늘의 경험은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겠지. 이른바 망각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매년 이런 상황에 바보처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은 아직 저 앞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고, 겨울은 아직 손을 뻗치면 닿는 거리에서 신발끈을 묶고 있다. 밀려올 봄의 온기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아직은 현관을 나서지 못한 겨울에 안녕을 고할 시간도 있다. 양쪽의 손을 잡아끌어 서로 쥐어주며 인사라도 시키고 싶은 마음. 이제 곧 겨울은 영영 사라져 버릴 테고, 봄은 일상이 되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겠지. 그러니 어떻게 지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Walden’에서 봄은 한 해의 아침이라고 했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은 ‘비밀의 화원’에서 ‘She felt as if something were pushing and stirring in the earth 그녀는 대지 어딘가에서 봄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라는 표현으로 봄의 기운을 묘사했다. 문학가들에게 봄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만물 탄생의 메타포인가보다. 그러고 보면 이런 표현들에 가만히 있던 겨울이 은근히 이미지에 타격을 받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알베르 카뮈는 그의 에세이에서 이렇게까지 표현했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 안에는 꺼지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In the depth of winter, I finally learned
that within me there lay an invincible summer
이렇게 저격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긴 하지만 ‘자신의 에세이에서 무슨 말을 한들 뭐 어때?’ 하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나도 한번 써 봤다.
여름이 가득한 순간에도
내 안에는 여전히 조용한 겨울이 살아있었다.Even in the fullness of summer,
I realized that a quiet winter still lived within me.
솔직히 여름은 겨울에 생각해도 지긋지긋함. 어쨌든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