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소비장려를 위한 글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갔어. 살짝 고백하자면 서점은 내게 새 책 냄새와 신제품 문구가 가득한 경이와 힐링의 공간. 별것 아닌 내용을 담고 있어도, 모조지에 예쁜 폰트로 인쇄한 후 심플한 일러스트와 제목을 얹은 두터운 합지로 둘러싸서 예쁘게 매대 위에 올려두면, 얼마나 그럴듯해 보이는지 알아? 실물 비즈니스가 보여주는 형식의 중요성을 나는 좋아하고 인정하는 편. 

음악을 만들 때의 서사와 감정들을 찍고 그려서 예쁘게 부클릿을 만들어. 그리고, 투명 플라스틱 안에 음악전달용 매체와 함께 담아 그 음악을 사랑해 줄 사람에게 전달한다. 그 정성이 너무 따뜻하지 않니? 디지털에 지배당해 버린 세상에서 앨범커버 하나만 플레이 스크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스트리밍 비즈니스가 너무 차갑다고 느끼는 건, 이제 나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잘 쓰면서 지랄이야’ 라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음)

버튼만 클릭하면 내 디바이스로 전달되는 천편일률 사이즈의 동일 폰트, 동일 포맷의 이북은 – 젠장 – 두께가 어느 정도 되는지 눈대중으로 가늠도 안 돼. 책장을 열어 제본 후 처음 하늘을 보는 책을 구경하는 것도 불가능해. 심지어는 베고 누울 수도 없어. 

가슴에 안을 수도 없지. 

책상 위에 며칠이고 놓아둘 수도 없다니까. 

실물에 책정되었던 가격은 그대로 디지털 프라이스에 복제가 되어 버렸어. 손에 턱~ 잡을 수 있는 책도, 100kb 용량의 이북도 가격은 10% 이상 차이가 나지 않지.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큰 차이가 없지만 인류 생태계에는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이전에는 내가 책을 사기 위해 지불한 금액을 나무를 베는 사람, 운송하는 사람, 종이를 만드는 사람, 인쇄하는 사람, 디자인하는 사람, 글을 쓴 사람, 창고에서 보관하는 사람,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중 극히 일부가 독식하는 구조가 된 거야. 새로운 파이프라인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돈을 벌어 책을 살 수 없겠지. 슬프다.

문구 매장 쪽으로 가보니 새롭게 출시된 펜들을 중앙에서 크게 홍보하고 있었어. 이제 일터에서는 거의 펜과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학교는 어때? 아이패드에 펜슬로 필기를 하겠지? 펜과 색연필을 들고 예쁘게 설명글을 덧쓰고 데코레이션 하는 학생들은 이제 거의 없을 것 같네.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져. 언젠가는 예쁜 메모장도, 슥슥 기분 좋게 종이를 긁는 필기도구도 모두 사라져 버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펜을 몇 개 집어 들고 나왔다. 제발 많이 팔려서 파이롯트나 미쓰비시 연필이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계속 새로운 펜을 출시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면서 말이야. 이건 다른 말이지만 이삼천 원짜리 펜의 퀄리티가 어쩌면 이렇게 좋은지 눈물이 날 정도라니까?

너네도 좀 가서 사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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