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자전거를 타고 큰길을 달리고 있는데 골목길에서 승용차가 튀어나와 내 측면을 받았다. 자전거는 날아가고 몸은 공중에 떴다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주변에서 불러 준 119 구급차를 타고 아산병원 응급실에 가서 전신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 외 여러 검사를 받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바퀴 달린 환자용 침대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게 제일 힘들었고(나는 멀미를 심하게 함), 사고 시 바닥에 떨어질 때 손등이 쓸려 생긴 상처가 가장 아팠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그런 상처는 쳐다도 안 본다. 간호사는 모든 검사가 끝나고 거의 퇴원 직전이 되어서야 나타나서는 상처에 소독약을 붓고 거즈로 때 벗기듯 환부를 벅벅 밀어댔다. 놀라서 소리도 못 지르고 눈을 번쩍 떴더니 드라이하게
눈이 크신데요?
한다. 눈이 큰 게 아니라 생각보다 엄청 아팠던 거였음(내 눈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그다음 날 온몸이 장난 없이 아프기 시작해서 좀 놀랐다. 여러분 교통사고는 이후에 점점 더 아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2.
새로 교체한 볼펜심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주 전 즈음 그 볼펜을 구매했던 교보문고에 직접 가서 교체를 받은 건데, 안쪽에서 터진 기존 심의 잔재를 면봉을 너 다섯 개 써가면서 깨끗이 정리해 주시던 점원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비행기를 타셨을 때 기압차이로 심이 터졌을 수 있어요. 이런 상태로 많이 들 오시거든요.
그런 세심한 케어를 받았으니 교체한 심이 불량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판매자의 도리를 한참 초과해 버린 서비스의 무게가 너무 컸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쿠팡을 검색했는데 가격이 반절이네. 게다가 다음 날 배송되고 심지어 잉크의 흐름도 좋았다는 거. 비대면 세상의 어택에 그 직원의 일자리에 대한 걱정이 오버랩되어 꽤 심난했다.
3.
볼펜 심을 교체하고 봤더니 수첩형 노트도 다 떨어져 있었다. 같은 종류의 노트를 사러 가까운 월드타워의 아크앤북에 갔는데 주변의 다른 노트들도 눈에 들어와 한 여섯일곱 권을 집어 들고는 집으로 왔다. 종류가 다른 노트를 책상 위에 늘어놓고 보니 모두 써보고 싶어 졌지만, 나는 노트 하나로 일 년은 쓰는 것이다(사실 펜으로 뭘 쓸 일이 없음). 마음이 조급해져서 노트 하나를 열고 펜을 집어 들었는데 쓸 것이 없어서 집 주소만 한 세 번 썼다는 이야기. 최근 5년 동안 가장 많이 쓴 게 아마 집 주소 같은데, 주거지가 없었으면 노트를 열 때마다 우울했을지도…
4.
같이 일하는 친구와 지하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데 20층 자리에 두고 온 폰에서 (워치에) 알람이 왔다는 거다. 아무리 블루투스의 버전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이게 말이 되나? 하지만 진지하게 정말이라며 워치를 보여주는 그녀. 눈으로 보고도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셀룰러 버전 아니냐고 날카롭게 물었지만, 와이파이 버전이라네.
며칠이 지나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오늘 집 근처 카페에서 음악을 듣다가 폰을 자리에 둔 채 떨어진 화장실을 가는 나를 발견! 그때 일을 떠올리며 내심 기대했지만 화장실에 도착도 하기 전에 음악은 끊기고 말았다. 게다가 자리에 돌아왔는데 자동 연결조차 안 됨.(소니 헤드폰만 그런 것일 수도 있음). 생각해 보니 워치도 차고 있었는데 쳐다볼 생각도 안 했네. 그렇다고 다시 가기는 귀찮다는 거.
5.
‘그림책 페어런팅’을 읽고 있다. ‘1-7세 발달심리를 이해하기 위한 그림책 독서’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아이들을 위한 낱말 카드 앱이나 동화책 플랫폼을 만들 때 참고하려고 며칠 전 집 근처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앱이고 뭐고 줄곧 리딩 삼매경三昧境 중이라는 거.
그중 그림책의 글과 그림의 관계에 대해 소개하자면, 둘의 이야기가 일치하는 ‘대응 관계’. 글이 그림을 보충하고 그림이 글을 보충하는 ‘상호 보완 관계’. 마지막으로 둘이 서로 모순된 이야기를 하는 ‘굴절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 설명 직후 관련된 그림책을 소개하는데, 아니 이런 것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로지의 산책]은 그림텍스트를 읽는 시각적 문해력이 없다면 재미를 조금도 느낄 수 없을 거예요. 글텍스트와 그림텍스트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충돌시켜 긴장과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를 눈치챈 독자 아이들은 로지에게 여우의 존재를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복달하겠지요. 그림책은 이렇게나 재미있습니다!
라고하고 있지만, 아무도 눈치 못 챌 것 같음. 서점에서 가끔 열어보는 그림책들이 다 이상한 것들 투성이었던 이유가 있었다.
6.
서너 달 동안 지긋지긋하게 덥거나 짜증 나게 폭우만 뿌리더니 갑자기 추워져 버렸다. 아무래도 봄, 가을을 우리나라 계절 리스트에서 삭제하고, 사계절이라는 말을 대체할 다른 용어를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계절’은 이번 계절과 헛갈릴 것 같고, ‘쌍계절’은 왠지 욕 같고, ‘두계절’도 왠지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어쩌지? 내가 그러자고 해도 아무도 신경 안 쓸 텐데 혼자 고민 중.
7.
이번주에 술자리가 여러 번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가 일상일 수 있는데, 내겐 엄청난 이벤트 기간이었다는 거. 어쨌든 나만의 핼러윈 주간 같은 느낌으로 저녁마다 열심히 술을 마셨다.
나는 여러 사람이 모이는 술자리가 끝나고 나면 진이 빠지는 타입으로 거의 완전체급의 I 임을 자랑한다. 그런 이유로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친한 사람들과 소수로만 술자리를 갖는 편인데, 막상 술자리에 가면 말을 꽤 많이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E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편이다. 그런데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는 거. 하지만 오늘 조현아 유튜브 클립에 게스트로 출연한 장도연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릎을 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내성적이면서 이 일을 왜 하는지 알아? 나는 내가 너무 웃겨.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어.
솔직히 나도 내가 너무 웃기다고 생각함.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