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대 차량사고 매뉴얼

두 달쯤 전에 자전거를 타고 대로를 직진하다가 이면도로에서 들어오는 승용차에 들이 받히는 사고를 당했고, 이런 사고는 처음이어서 어설프게 대처하며 두 달가량 꽤 고생했다. 덕분에 다음부터는 잘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음.(물론 사고를 또 겪고 싶은 건 아님) 혹시라도 비슷한 사고를 당하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정보를 남겨보고자 한다.

1. 119에 타게 되면 어느 병원을 가는 게 좋겠냐고 물어본다. 이때 이후 처리를 생각하면 ‘교통사고 전문병원’으로 가자고 하는 게 편함(개인적 의견임). 나는 아산병원 응급실로 가달라고 했는데 큰 병원 응급실은 FIFO(First in fisrt out: 선입선출)가 아니라 위급 순서로 진료를 보기 때문에 한참 대기해야 하고, 큰 문제가 없으면 바로 퇴원을 시킨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퇴원이 문제 될 건 없겠지만, 교통사고는 하루 자고 일어나면 또 상태가 달라지고 – 나도 퇴원 후 다음 날 못 일어났음 – 나중에 대인처리할 때도 입원한 것과 안 한 것이 차이가 크다고 하니 참고하자.

2. 응급실에서 4주 이상 진단을 받게 되면 초진진료차트와 진단서를 끊을 것. 지자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지역주민 자전거 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위의 두 자료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나는 골절이 없어 바로 퇴원하는 바람에 받지 않았는데, 사실 그때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음.

3. 이후 상대 자동차 보험 쪽과 대인, 대물 관련 배상처리를 진행하게 되는데, 일상배상보험으로 자전거 쪽도 보험처리가 가능하다고 함. 그런데 자전거의 과실이 적다면 보험사를 직접 대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나는 10:0 혹은 9:1로 내 과실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음)

4. 대물처리는 자전거 수선센터에서 견적서를 먼저 받아 이를 대물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게 속도가 빠름. 나는 사고가 처음이라 보험사에서 어떻게 진행하는지 프로세스를 알려주면 그대로 진행하려 했다가 처리가 두 달이 넘게 걸림. 보험사의 대물 쪽은 사고가 많아서 그런지 먼저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오지 않는 느낌인데, 이건 대인 쪽과도 조금 달랐다.(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음) 이후 보상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그 견적서를 기반으로 대물처리 담당자와 조율해나가게 됨. 

5. 이때 처음 과실비율을 정하는 작업을 하는데, 차 주인이나 자전거 주인 모두 그 과실비율에 이상하리만큼 집착하게 된다. 내 경우도 과실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9:1이라고 우겨서 꽤 짜증이 났음. 하지만 보험사 대 피해자처리의 경우 과실비율가 보험사의 큰 관심사는 아니다. 사실 당사자들도 과실비율보다는 실제 손실보전 금액이나 할증점수가 더 중요함. 그에 따라 배상금액이 정해지고 보험료가 올라가기 때문. 그러니 너무 과실비율에 몰입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잘 커뮤니케이션할 것.

보험사의 손실 처리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더 잘 대응할 수 있을 테니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음. 과실비율 9:1인 경우에 승용차 자차 수리비가 500만 원 나왔다면, 보험사는 우선 고객에게 500만 원을 전액 전달하고 자전거 쪽에 제공해야 하는 대물 금액에서 500만 원의 10%인 50만 원을 제하게 됨. 대인도 마찬가지. 

5. 대인처리의 경우 병원에 보험사에서 받은 처리번호를 알려주면 4주 동안은 별다른 처리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때는 물리치료만 가능하며 4주 이후에도 계속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함. 하지만, 4주 이후에는 진단서를 추가로 끊어 보험사에 제출해야 기간이 연장되며, 보통 2주마다 리뉴얼하게 된다. 진단서 -> 연장 -> 진료의 순서이니 기간이 끝나가는데도 몸이 안 좋으면 진단서를 받아 연장해두는 것이 좋음.
약값이나 진단서 비용은 모두 나중에 보험사에 청구가 가능하니 영수증을 준비할 것. 나는 약 먹는 걸 싫어해서 처음에 받은 처방전을 그냥 버렸더니 다음부터는 의사 선생님이 처방전을 아예 안 주심. 환자의 처방전 사용여부를 의사가 알 수 있는 것 같은데, 진료결과를 무시했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됨. 그게 아니었어요. 의사선생님… 개인 정보 정말 이래도 되나요?

6. 대인의 경우 치료비 외에 합의를 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 치료가 진행되었다고 생각되는 시기가 되면 합의를 제시해 옴. 합의 후에는 더 이상 보험사에서 진료비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 보험사고 처리의 종료라고 보면 된다. 그런 중요한 작업이므로 보험사 내에서도 KPI 관리를 하기 때문에 월말 즈음이면 합의가 더 잘 될 수도 있다고 함. 그래봤자 큰 차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월 초에 함. 

두 달가량 사고처리를 진행하며 드는 생각은 건강이 최고라는 것. 앞으로 조심해서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다짐했음. 아무리 보상을 받는다 해도 감가상각 등을 고려할 때 마음에 드는 보상을 받기 힘들고, 자동차처럼 부품이 센터에 모두 준비되어 있는 게 아니라 깔끔한 수리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몸을 심하게 다친다면 평생 고생을 감수해야 하며, 얼굴 같은데 상처라도 난다면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우울해질 것 만 같음. 게다가 보상에 대한 처리를 진행하는 내내 증거를 제공해야 하는 피의자 같은 느낌이 들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보험사에서 친절하게 대한다 해도 편한 대화는 아님)

무엇보다도 대로를 직진하고 있는데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옆을 들이받고는, 공중에 떴다가 바닥에 떨어져 못 일어나고 있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안 했던 아줌마에게 한마디 꼭 하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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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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