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의 아침식사

서울에 있을 때에는 보통 아침을 먹지 않았다. 항상 늦게 일어나는 편이라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물론 가끔 예외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랬다.


서머타임이 회수된 샌프란시스코의 겨울은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어둑어둑 해져서 버스 안에서 바깥을 분간할 수 없다. 덕분에 아침은 생각보다 이르게 시작되고, 그때가 되면 태양은 계절과 상관없이 방 안을 환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평소보다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나도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아침을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찍 집을 나서니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함께 식사를 할 시간은 늘 충분했다. 진열대에는 언제나 꽤 많은 종류의 샌드위치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나는 날마다 하나씩 먹어보기 시작했다. 시간은 만화경 속 색종이 조각만큼 많기 때문에 천천히 순서대로 먹어보면 된다.

그러다가  5일째부터는 다른 메뉴를 선택하지 않게 되었는데,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Double-Smoked Bacon Cheddar & Egg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음식 때문에 짜증 났던 적이 많았다. 나로  이야기하자면 타고 난 미맹으로 평생 먹을 것 때문에 고생해 본 적이 없으며, 아예 맛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다. 심지어는 길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거나 냉장고 바깥에 깜빡 내어 둔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 인간 정화조 스타일로,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인재의 기본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음식은 그런 나도 참을 수가 없을 정도인데, 대부분의 음식이 지나치게 짜거나 달기 때문이다.

이곳에 도착했던 첫날 호텔 옆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크림소스 스파게티를 주문했었는데, 염전에 입 벌리고 엎어진 느낌으로 먹다가 결국 사람을 부르고 말았었다.

– 이거 너무 짠데…
‘잠깐만 주방장 불러줄게.’
‘그렇게 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하고 있는데, 주방장이 왔다.

– 이거 너무 짜.
‘이상하다 안 짤텐데?’
– 짠데?
‘이 음식을 만드는 데는 소금이 하나도 안 들어가.’
– 그래?
‘베이컨이랑 치즈 밖에 안 들어가는 걸?’
– …(그거 다 짠 거잖아….)
‘소금은 없어.’
– 그래?
‘내가 한번 먹어볼게.’
– go ahead.
‘(엄청 짠 표정으로) 거봐… 안.. 짜잖아…’

알았다고 하고는 맥주를 시켜서 조금 더 같이 먹다가 더는 못 먹겠어서 계산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런데, 주방장이 안쪽에서 내게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윙크를 찡긋 한다.

‘맥주는 내가 사는 거야!’

짜지 이눔아? 어쨌든, 그곳뿐 아니라 다른 곳도 대부분 소금물에 삼사일 절여둔 것 같은 음식 투성이어서 결국 참지 못하고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말이 조금 다른 쪽으로 흘렀는데, 스타벅스의 ‘Double-Smoked Bacon Cheddar & Egg’는 베이컨이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짜지 않으며, 적당하게 심심하면서도 질리지 않았다. 덕분에 다른 메뉴들은 거들떠도 안 보고 몇 주째 저것만 오대수의 군만두처럼 먹어댔다. 그렇게 계속 먹다 보니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

우선은 좋은 재료를 산다. 실력이 없으면 재료로 승부하는 것이 주부 철칙 아닌가. 음식이 맛이 없어도, ‘몸에 좋은 거야 어서 먹어.’ 하며 재료의 퀄리티로 어필하는 것. 남이 만들어 주는 음식 앞에서 ‘식자재의 질은 농부의 공인데 왜 네가 가로채?’ 하고 투덜대는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 나는 홀푸드 마켓으로 향했다. 

마트에서 가장 비싼 치즈, 유기농 계란 그리고, 초 고가의 베이컨을 사 와서는 계란을 부치고, 베이컨을 구워 크로와상 사이에 끼워 먹어 보았다. 그런데, 그 맛이 정말 1%도 나지 않음. 다른 재료들로 바꾸어 가면서 조리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 먹는 입장이라면 좋은 재료든 뭐든, 이 샌드위치에 1불도 지불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접근 방법이 좀 잘못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스타벅스 샌드위치의 재료와 상태를 눈으로 상세히 확인했다. 그것들과 가장 비슷한 재료로 제일 흡사한 모양의 샌드위치를 만들자. 마트에서 제일 비슷한 것을 찾으니 흔한 체더치즈와 저렴한 베이컨이 그 후보가 된다. 둘을 합쳐도 10불이 되지 않는다는 게 대박이었다.  

재료가 준비되었으면 샌드위치의 상태와 식감을 기억하면서 제작에 들어간다. 먼저 크로와상을 토스터기를 사용해서 한입 물면 빵부스러기가 바스락 떨어질 정도로 굽는다. 물론 타면 안 된다. 실리콘 가이드를 사용해 계란을 동그랗고 두텁게 부치고, 그 위에 베이컨을 시간을 들여 바삭하게 구워 올린다. 물론 기름기는 모두 제거해 준다. 마지막으로 치즈는 너무 넘치지 않게 적당히 잘라 올려준다. 한 장을 그대로 다 올리면 너무 짜고 모양도 보기 좋지 않기 때문이다.

완성된 샌드위치의 모양이 너무 그럴듯해서 마치 스타벅스에서 주문한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살짝 감동하면서 한입 깨물어 봤는데,

사 먹어서 맛있는 건 계속 그냥  사 먹을 것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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