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봄날

날씨가 왔다 갔다 했다. 봄인가 보다 하고 집을 나서다가 더운 바람에 놀라고, 생각지 못하게 비가 내린 날은 싸늘한 공기에 몸을 움츠렸다. 최근 몇 주 동안 계속 그런 날들이 계속되다 보니 아침마다 날씨를 보는 버릇이 생겼어. 그래봤자 별다른 준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해. 생각보다 나 자신이 날씨에 대한 옷차림 전략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지. 늘 대충 입고 날씨에 따라 조금 더워하던가 추워하는 성격. 맙소사, 이렇게 대충 살고 있었다니… 이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는데, 날씨에 민감하다는 것. 날씨의 변화를 섬세하게 인지하게 된다고 할까? 그게 뭐가 장점이냐고? 장점이라기보다는, 그런 변화의 인지를 계기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삶을 살아가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는 거야.

아이유가 자신의 앨범 주제가 자신의 나이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꽤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나. 자신의 경험이 한정되어 창작을 위한 소재가 다양하지 않은데, 나이라는 건 매년 변하고 그때마다 나 자신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나 가치관도 달라져서 늘 새롭게 대할 수 있는 소재였다는 거야. 그런 이유로 자신을 위해 또, 팬들을 위해 현재 스냅숏을 남기는 느낌으로 앨범 준비를 한다는 그녀. 귀엽다. 

우리는 세월 안에서 점점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쪽으로 들어가 문을 닫기 때문에, 그런 범위는 더 좁아지기 마련이다. 점점 주변에는 나와 맞는 사람만 남게 되고, 익숙한 장소만을 돌아다니지. 그렇게 새로운 것이 흔치 않게 되어버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단순한 생활 안에서도 다이내믹한 변화를 느끼게 해 줄 만화경 같은 것을 찾아낼 필요가 있어. 아이유에게 자신의 나이가 그렇듯, 내겐 날씨가 그래.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직감했다. 올해 중 가장 완벽한 봄을 누릴 수 있는 날이 될 거라고 말이야. 자전거를 타고 서울숲까지 달려 근처의 카페에 들어갔는데 아침 일찍인데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어. 나도 창가에 앉아 봄바람이 화단에 떨어지는 아침 햇살을 흔드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유튜브에서 저장해 두었던 ‘봄을 가장 완벽하게 즐기는 방법’이라는 플레이리스트를 열었어. 그때 클립의 첫 곡인 Forrest Nolan의 ‘Sinatra’가 끝나기도 전에 내 즐겨찾기에 저장했었던 기억이 나. 이 곡이 흘러나오자마자 창 밖의 풍경이 슬로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흔들리는 꽃잎도, 지나가는 사람도 모두 천천히 움직였다. ‘저런 속도라면 약속 시간에 늦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속도야. 그렇게 한참을 음악과 오버랩되는 바깥을 구경하고 있다가 그 봄노래 플레이리스트의 어떤 댓글을 보게 되었어.

좋아요 누르는 순간 당신의 시험 성적은 올 A+를 평생 맞게 됩니다. 그리고 평생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될 것이며 행복해지고, 절대 슬픈 일이 안 일어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어느 댓글에도 좋아요가 없는데, 해당 댓글은 126개의 좋아요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좋아요를 127개로 만들었지. 나를 미소 짓게 하는 모든 것들에는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으니까.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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