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와 컨스피러시

‘아. 또 흘렸네. 토마토는 정말 아무리 조심하면서 먹어도 흘리지 않은 적이 없다니까?’

‘토마토? 그건 흘리도록 설계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좀 긴 이야기다.

‘토마토가 어디서 처음 발견되었는지 알아?’

‘응? 글쎄. 유럽 아닐까? 그곳 요리들에 토마토는 단골로 등장하니 말이야.’

잘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토마토는 원래 남미 페루의 안데스 산맥에서 발견됐어. 그 이후 16세기 초에 남미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거야. 처음에는 독초 취급을 받았다고 해. 대부분의 과일에 단맛이 있는데, 과일처럼 생겼는데도 단맛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

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인류에게 건강이 중요한 화두가 된 이후 단맛이 빠진 과일인 토마토는 지속적으로 인기가 높아졌어. 토마토는 미국 타임스가 선정한 10대 슈퍼푸드 중의 하나인데, 성분 자체도 거의 사기야. 유기산, 아미노산, 루틴, 단백질, 당질, 회분, 칼슘, 칼륨, 철, 인, 비타민A, 비타민B1, 비타민B2, 비타민C 외에도 여러 무기질이 들어있다니까? 비타민 C의 경우는 토마토 한 개에 하루 섭취량의 절반가량이 들어있고, 칼륨 성분은 체내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고혈압에도 도움이 돼. 우리나라 사람들은 짜게 먹는 식습관이 있어서 더 잘 맞지. 토마토에 들어있는 라이코펜 lycopene이라는 성분은 항산화 물질 중의 하나로 노화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배출시켜 세포의 젊음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해줘. 게다가 남성의 전립선암이나 여성의 유방암, 소화기 계통의 암을 예방하는데도 효과가 있지. 알코올을 분해할 때 생기는 독성물질을 배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해서 너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축복 같은 과일이라고.’

‘그런데, 토마토가 과일인가?’

‘사실 그건 좀 논란이 있어. 원래 나무에서 자라는 것은 과일, 밭에서 나는 것은 채소야. 조금 더 학술적으로 이야기하면, 채소는 일 년생 식물, 과일은 다년생 식물이거든. 그런데, 줄기에서 열려 과일처럼 보이는 채소들이 있는데, 수박, 토마토, 딸기, 옥수수 등이 그런 종류야. 토마토는 그중에서도 너무 과일 같기 때문에 법정에 서기까지 했었어. 1893년 미국 대법원은 학술적인 구분 방법 외에도 자국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 수입 채소에는 10%의 관세를 물릴 수 있거든 – 채소로 판결을 내렸지.’

‘복잡하구나. 그런데, 토마토가 흘리도록 설계가 되어있다는 건 뭐야?’

‘아. 맞다. 그건 좀 복잡한 이야기이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닐 수도 있어.’

‘내가 이해력이 빠르다는 거 알잖아.’

인간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타임라인 관점으로는 직관적인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응. 사실 토마토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지구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해.’

‘지구의 주인?’

그런 반응은 당연한 거다. 인간에게 지구의 주인공은 인간뿐이니까.

‘그래, 지구의 주인. 곧 나가야 하니 간단하게 이야기해줄게. 믿기 힘든 이야기겠지만 그걸 받아들이면, 토마토를 먹을 때마다 질질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겠지.

‘인간의 조상은 지구에 신생대 말기에 최초로 출현했어. 그게 6700만 년 전 정도니까 선캄브리아 시대의 시작인 46억 년 전과 비교하면 인류가 지구에 존재해온 건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 손톱만큼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해. 처음 지구가 구체의 모양으로 형태를 갖추었던 시기가 선캄브리아 시대인데, 그때 여러 운석들과 충돌을 했다는 이야기를 지구과학 시간에 들었을 거야. 그때 지구에 처음으로 생명체가 운석을 통해 도착했는데,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생명의 기원이 미확인물체에 의해서 지구에 전달되었다는 거야. 이후 원생누대에 이르러 지구에 대기가 생기고, 생명체가 등장하기 시작했잖아? 그때 그 생명체들은 외계에서 전달된 생명의 기원이 유전자 복제되어 지구의 여러 화학적 특성을 고려한 테일러링을 거쳐 여러 형태의 생명체 시드로 만들어진 거거든. 그리고, 지구에 플랜팅 된 거지.’

생명의 기원이 미확인물체에 의해 전달되었다는 것만 흘리면, 대충 그런가 보다 할만한 내용이다.

‘사실 우주에 지구 같은 별이 생기게 되면 언제나 그런 메커니즘이 발동하게 되는 거야. 누구에 의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생명의 기원이 미확인 물체를 통해 전달되고, 그 미확인 물체 내의 시스템에 의해 생명의 기원이 해당 별의 특성에 따라 적절하게 유전 변형되어 그 별에 심어지게 된다’. 물론 별은 엄청나게 많고,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경우의 수들도 엄청나기 때문에 성공 확률은 아주 적지. 알다시피 태양계만 해도 성공한 게 지구뿐이잖아.’

‘너 소설 쓰니?’

그런 귀찮은 일을 할 리가 없잖아.

일반적으로 지구에 존재하는 기간인 백 년 남짓 정도가 일반 사람이 논리적 사고를 적용할 수 있는 절대적 기간이며, 그 너머를 생각하는 이들은 극히 일부다. 예측이라는 것도 한 달 앞, 일 년 앞, 길어봤자 수년 앞을 바라볼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니까.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는 역사공부를 할 때 한번 들으며 공룡 정도와 연관시켜 암기하게 되는 대명사지, 직관에 와 닿는 이해가 가능한 시대는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구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대하게 되는 시간은 마치 영화를 보듯, 드라마를 보듯, 그런 식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건 그렇고, 이해를 하던 못하던 토마토 이야기나 끝내버려야겠어.  

‘그러면, 토마토 이야기로 다시 넘어가 볼게. 어쨌든 지구는 인류보다 훨씬 더 진보된 테크놀로지를 보유한 – 혹은 그것을 아예 초월한 절대주의적 – 주인에 의해 설계되었고, 그들은 지구 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컨트롤하고 싶어 해. 네가 너희 집 에어컨 리모컨이 사라지는 것을 못 참는 것처럼 말이야. 무언가를 만들고 관리한다는 개념은 생명의 기원을 만든 존재 자체의 특질이고, 그건 인간의 유전자에도 전이되어 있어.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자연스럽게 일을 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 보수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하는 거야. 어쨌든, 지구를 컨트롤하기 위한 장치는 유전학적 진화를 통해 이미 엄청나게 많이 준비되어 있다고 보면 돼. 그리고, 토마토는 그중 지구 표면의 모양, 높이를 식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토마토가 지구 표면을?’

이제 미팅 장소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어서 최대한 빨리 끝맺어야 한다.

‘어군 탐지기라고 혹시 알아?’

‘그건 낚시하는 사람들이 물고기가 많은 곳을 찾기 위해 사용하는 기기 아냐?’

‘맞아. 그 기기는 메아리의 원리로 작동하거든. 어탐 센서에서는 초음파가 발신되는데, 이 음파가 어군이나 해저를 만나면 반사가 되어 다시 어탐 센서에 수신이 돼. 그렇게 되돌아온 시간을 음파의 속도와 곱하면 음파의 이동거리가 나오지. 이때 반사파의 강약을 분석해서 어군의 크기나 밀도, 혹은 해저의 형상이나 지질을 화면에 표시해주도록 되어있어. 물론 기술은 많이 다르지만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 어탐 센서 같은 – 기관이 지구의 중심 쪽에 존재하고 있는데, 이 기관은 생명의 기원이 미확인 물체에 의해 전달될 때 해당 별의 중심에 함께 심어지는 거야. 이 기관은 지속적으로 해당 별 표면의 모양과 재질 정보를 수집하고, 정기적으로 전 우주의 생태계를 관장하는 존재에게 보내도록 되어있어. 사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 존재에 의해 정보가 수집되는 건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사고가 정지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였지만 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빨리 출발하지 않으면 다음 미팅 장소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는 것이다.

‘미확인 물체들이 지구를 방문할 때 꼭 필요한 정보가 있는데, 그게 별의 표면 정보야. 착륙을 해야 하니까. 우리가 비행기를 띄우거나 로켓을 발사할 때 늘 함께 입력해두는 것이 돌아올 곳의 좌표라는 걸 알고 있어? 매번 종이비행기를 던지거나 장난감 드론을 날릴 때처럼 ad-hoc으로 착륙할 곳을 찾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지구는 인류에 의해 표면이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꽤 자주 조사하지 않으면 안 돼.’

‘…’

‘토마토의 씨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점막은 지구 중심에 심어져 있는 기관에서 발신하는 파동을 가장 잘 반사시킬 수 있는 물질이야. ‘기관은 파동을 발신하고, 토마토의 씨와 점막은 그 파동을 반사시킨다.’ 그렇게 어군 탐지기처럼 지구의 표면을 계속 스캔하는 거지. 토마토는 껍질 안쪽에 비교적 넓은 공간들이 있고, 그 안에 축축한 씨가 들어있는 구조잖아. 어느 귀퉁이라도 한번 깨어 물면 외부와 연결된 큰 구멍이 생기고, 그 구조적 특징으로 먹는 내내 토마토 외벽에 작용하는 힘과 중력에 의해 공간에 존재하던 축축한 씨들이 바닥으로 흘러내려. 한마디로 ‘먹는 동안 씨가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구조로 설계가 되었다고 보면 돼. 인류가 토마토를 깨물어 먹는 이상 지구의 표면은 지속적으로 스캔되는 거지. 외계 생물체들이 지구를 방문할 때 U.F.O의 착륙 지점이 발각되는 일이 흔치 않은 이유가 있다니까?’

‘…’

‘그럼 나는 미팅이 있어서 먼저 나가볼게.’

..

‘응.. 그래.’


아무래도 앞으로 이 친구와 같이 과일을 먹는 것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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