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안녕 봄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 시인은 절에 다녀오면서 그리운 사람의 가슴 처마 끝에 풍경을 달아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풍경 소리가 들리면 자신의 마음이 찾아간 줄 알라고 말한다. 단지 바람에 풍경이 흔들려도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싶어 하나?’ 할 테니 손해 볼 게 전혀 없는, 멋스러움과 효율을 한꺼번에 잡은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아이유의 ‘봄, 안녕 봄’은 왠지 그 시의 답가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랑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생활에 마치 폭풍처럼 다가온다. 태어나서 그때까지 경험했던 것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감정의 전쟁 같은 시기를 보내며, 사람들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행복의 본질을 알게 되며,
다시 죽음 같은 아픔 속에서
새로운 절망을 경험하게 된다.

초단위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거짓말을 하고, 질투를 하고,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며 손으로는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엉망진창이다. 예술 작품의 대부분이 사랑을 다루고 있는 이유다. 사랑이 아니라면, 화제는 날씨 혹은 나이 정도뿐이니까.


음악 속의 그녀는 그런 폭풍의 시기를 지나 다시 호수처럼 잔잔한 생활로 돌아왔나 보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봄을 맞았다. 따뜻한 햇살 밑으로 낮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 따뜻한 공기가 마치 그때 그 사람의 안부인사 같다. 아니 봄 자체가 마치 내 앞에 그 사람처럼 마주 서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풍경 소리가 사라지면 다시 혼자가 되어버리는 것을 알듯, 그녀는 그 안부를 잘 지내라는 ‘따뜻한 이별 인사’라 생각한다. 다시 뒤돌아 그에게 달려가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잠시 따뜻한 기억과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런 그림이 나오는 시기는 봄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정신없는 여름과 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봄과 비슷한 가을도 왠지 따뜻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이유로 잘 지내라는 안부인사가 아니라 다시 전쟁으로 끌어들이려는 재입영 통지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휙 뒤돌아 상대에게 뛰어가거나 혹은 뒤도 안 보고 도망쳐버리거나… 뭐든, 가만히 따뜻하게 서 있는 것만은 못할 것 같다. 우선 따뜻하지 않으니 말이다.

반면에 봄은 – 뭣도 없는 무미건조한 상황에서 조차 – 가만히 길가에 앉아만 있어도 따뜻한을 느낀다. 그런 이유로 관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계절이라고 할까? 풍경이 울리거나, 산들바람이 불면 시끄럽다거나, 머리가 헝클어져 짜증이 나는 대신, 그의 마음이 왔다 갔다고 생각하거나, 안부인사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그러고 보니 올해 처음으로 맞이한 완전한 봄날인 오늘, 길을 걷는데 바람이 불길래 머리가 헝클어져 짜증 난다고 생각했었다. 역시 나는 봄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 건가? 어쨌든, 봄이 왔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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