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속성 반나절 코스

사회생활에 찌든 후배가 휴가를 내고 샌프란시스코에 놀러 왔다.

‘형, 이거 내 힐링 여행이거든? 한번 샌프란시스코 투어를 맡겨볼게.’

‘힐링? 어디 가보고 싶었던 곳 있어?’

‘그런 거 없는데?’

‘…..’

그런 게 있었다면 내게 부탁하지는 않았겠지. 

그래 놓고는 다음 날 12시에 일어나서는 부산을 떨다가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밖에 나갈 준비를 끝낸 후배. 사람은 안 변한다더니 부지런한 건 여전하네. 나 혼자 지내기도 벅찬데 남의 힐링이라니, 하지만 미션을 받았으니 최대한 내 능력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적응하느라 이곳 샌프란시스코 바닥을 걷고 또 걸었으니 말이다. 집을 나서며 보니 오후 세 시.

어디 한번 발 가는 데로 투어를 시작해 볼까?

먼저 집에서 세 블록을 걸어 내려가 슈퍼 Mira 안의 샌프란시스코 명물 커피케이크를 한번 힐끗 보고, 제팬 타운으로 이동하여 제팬센터 내 다이소와 키노쿠니야 서점에서 각 5분씩 자유관람을 한다. 이어 필모어 스트리트를 경보하듯 여유 있게 걷다가 우버 Uber를 타고 롬바드 스트리트의 급커브 길로 가서 사진을 몇 장 찍는다. 다시 유니온 스퀘어로 이동해서 하트 오브 샌프란시스코 구조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옆 1개월 전에 오픈 한 뉴 애플스토어에서 3분의 자유시간을 갖는다. 이어서 마켓 스트리트 쪽으로 내려가 노드스트롬 백화점(지금은 팬더믹 이후 폐업)과 Crate and Barrel을 도합 10분 돌아보고는 페리 빌딩 쪽으로 올라가며 필즈 커피에서 모히또 라테를 원샷한다. 베이 근처의 예술가 거리의 노점상을 휙 둘러보고는 페리 빌딩으로 들어가 블루보틀에서 카푸치노를 원샷하며 사진을 찍는다. 옆의 오이스터 바에서 후딱 굴을 먹고는 바닷가 쪽에서 알카트라즈를 가리키며 사진 한 장을 더한다. 후배가 너무 담배를 피우고 싶다 해서 한 대 피우게 해 주고는 영업종료 직전인 MOMA로 뛰어가서 1층 기념품 샵만 5분 둘러본다. 다시 우버를 타고 콜럼버스 거리로 이동하여 베수비오 카페 옆에서 사진을 찍고, 비트 문화 Beat Culture의 상징인 시티 라이트 북스토어에서 5분간 숨을 돌린다. 이후 바로 차이나 타운으로 이동해서 기념품 매장 세 곳을 각 5분씩 돌아본 후, 한 인테리어 매장 앞의 원숭이 의자에 앉아 원숭이 표정을 하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투어를 마무리. 새크라멘토 스트리트로 이동해서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소시엘 Sociale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집에 들어오니 오후 9시가 되었다.

‘형, 이상해. 회사보다 더 힘들어.’

‘그러면 너네 회사에 가서 힐링하면 되겠네.’

‘하하하. 나 담배 피울래.’

‘피우지 마. 담배 냄새 나.’

‘회사 가고 싶어….’

피곤하다고 주절대면서도 후배는 힐링 순례를 계속하기 위해 다음 날 바로 라스베이거스로 떠났다. 아마 그는 그곳에서 엄청난 힐링을 하고 돌아와야 할 거다. 오후 시에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 배낭을 멘 채로 바로 페리를 타고 알카트라즈에 갔다가 소살리토에 가서 명물 햄버거스에서 버거를 먹고 손을 닦을 새도 없이 다시 금문교로 내려가 사진을 찍은 후 스탠리 파크보다 더 큰 Presidio를 걸어 다니며 요다 분수를 찾아야 할 테니 말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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